성마이클 샌프란시스코 한인성당 50주년 기념미사 강론

“The Korean Catholic Experience: Lessons for the Church in Contemporary Society”

Homily for the Parish Visit and 50th Anniversary Mass of St. Michael’s Korean Parish

Votive Mass, “For the Church”

 

                                                     Most Rev. Salvatore J. Cordileone

                                                     Archbishop of San Francisco

 

Introduction 서론

It is certainly a very happy occasion that brings us together today, to celebrate this Fiftieth Anniversary of the establishment of the first Korean Catholic community in the United States.  What a blessing and a boast it is for us here in San Francisco that this historical moment took place here in our city, in this Archdiocese.  In particular I am grateful to His Excellency, the Most Reverend Linus Seong Hyo Lee, Auxiliary Bishop of the Diocese of Suwon, for his presence with us today.  It is a sign of the tighter bond of communion that our two local churches share through the service that your priests provide to our Archdiocese in shepherding the Korean Catholics who live here.

미주 지역의 첫 한국 가톨릭 공동체 설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 오늘 모인 이 자리는 분명 아주 기쁜 자리입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이 여기 우리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것은 정말 축복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특별히,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수원 교구의 보좌 주교이신 이성효 리노 주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교님이 이 자리에 함께 하신 것은, 여기 살고 있는 한국 가톨릭 신자들을 사목하기 위해 주교님이 보내주시는 신부님들이 하시는 봉사를 통해, 우리 두 지역교회가 함께 나누는, 보다 밀접한 교감의 유대를 보여주는 표시입니다.

 

A Unique History 독특한 역사

The Catholic faith, of course, did not come to Korea in the usual way, in which a nation of ancient Christian faith discovers a new land; then sends missionaries to become familiar with the people and their culture, their customs and their language; and then they teach them practical skills and educate them in the arts and sciences; and then eventually, after this preparation for evangelization, the missionaries teach the faith to the people, baptizing them and nurturing them in faithfully living out their new Christian religion, eventually leading to the building of a new Christian civilization with its own unique cultural identity.  That is the usual way it happens.  It is well known, though, that in Korea it did not happen this way; in Korea, Catholicism began as a lay movement.

한국에는 가톨릭 신앙이 통상적인 방법으로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즉, 오랜 그리스도 신앙을 가진 나라가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그런 다음, 지역 주민들과 그 문화, 관습, 언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선교사를 파견하고; 그런 후에 지역민들에게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치고, 예술과 과학을 교육시켜서 복음화를 위한 준비를 한 다음, 선교사들이 사람들에게 신앙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새로운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북돋아주고, 결국에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화 정체성을 지닌 새로운 그리스도 문명을 건설하게끔 하는 방식 말입니다. 보통 그런 식으로 복음화가 됩니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가톨릭교가 평신도 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The Catholic faith first came to Korea by way of Christian literature brought into the country from Jesuits in China, beginning in 1777.  This opened up an intellectual quest for the truth of God’s word among your scholarly ancestors, and kindled within them a deeper desire for the Christian faith.  And so it was that one of those scholarly ancestors, Yi Seun-hunm, went to Beijing in 1784 and was baptized there, and then returned to Korea to spread his new faith and baptize others.  This marks the beginning of the Catholic faith in Korea, a completely lay-led initiative, and so it would continue for quite some time.  Five years later the first priest was able to secretly enter the country from China, and already found some 4,000 Catholics, none of whom had ever seen a priest.  Seven years later there were 10,000 Catholics.  Over all, though, the presence and ministry of priests was quite limited during the first half-century of the Catholic faith in Korea, with only two priests able to assist, and only for a time, during that period.  And yet, the Catholics there continued to deepen their unity in Christ and their life of prayer.  It was not until 1836 that the first French missionary priests were sent to Korea, after years of pleading from the fervent Catholics there.

            한국의 가톨릭 신앙은 (아마도) 중국에 있는 예수회원들이 그리스도교 서적을 1777년부터 한국에 들여옴으로써 된 것 같습니다. 이것이 실학자들에게 하느님 말씀의 진리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유발시켰고 그분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더 깊은 갈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실학자들중 한 분인, 이승훈이 1784년에 북경에 가서 영세 받고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신앙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처럼 완전히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결단력이 한국 가톨릭 신앙의 출발이고 이것이 꽤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5년 뒤, 첫번째 신부님이 몰래 중국에서 조선으로 입국할 수 있었고, 그 때 신자는 이미 약 4천명이 되었는데 신자들이 신부를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7년 뒤에는 가톨릭 신자가 만 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첫 반세기 동안 한국 가톨릭 신앙에서, 신부들의 존재와 사목은, 전반적으로 아주 제한된 것이어서, 오직 신부 두 명만이 활동할 수 있었고 그것도 잠시 동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가톨릭 신자들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와 기도 생활은 깊어만 갔습니다. 열심한 가톨릭 신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간청한 후인1836년에 이르러서야 최초의 프랑스 선교사 신부들이 한국에 파견되었습니다.

 

There is something else, too, to which the Korean experience points of a truly remarkable nature: being a strictly lay-led Church for its first several years means that Catholics in Korea went all those years without the Eucharist, and continued without it for most of the time during those first fifty years.  How could the Church have survived, let alone flourished, without the sacrament of the Bread of Life for all those years, especially those formative years?  It is, again, simply because of their faith.  The reception of the sacraments is not some sort of mechanical ritual; the sacraments are signs of God’s initiative and the response to faith already present.  Without the faith which the sacraments presuppose, they are simply empty rituals, conferring no benefit to those who receive them.  This is especially so with regard to the Eucharist: it presumes a life of faith, of spiritual communion with the Church as the only proper disposition to receive the sacrament of Communion worthily.  What burning desire must have welled up in the hearts of those first Korean Catholics, as they longed for the day when they would be able to receive their Lord and Savior in the Most Blessed Sacrament, and his forgiveness in the sacrament of Penance.

한국 가톨릭 (교회의) 경험의 진정한 특성으로 또 하나 있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 교회가 철저하게 평신도에 의해 이끌어졌다는 것은 그 여러 해 동안 뿐만 아니라 첫 50년 동안 대부분,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성체 없이 계속 생활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특별히, 신앙의 형성기에, 생명의 빵을 주는 성사없이 생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융성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순전히 그분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성사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일종의 기계적인 의식이 아닙니다. 성사는 하느님께서 먼저 추진하신다는 표시이고, 이미 가지고 있는 신앙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미 담보된 신앙이 결여된 성사는, 성사를 받는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텅빈 의식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성체 성사에 특별히 그렇습니다. 성체 성사를 합당하게 받아 모시기 위해서는 신앙의 삶, 교회와 영적인 교감을 나누는 삶이 전제됩니다.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인 구세주를 모시고, 또 고백 성사를 통해 죄의 사함을 받을 날을 고대하면서 기다린 한국의 첫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불타는 열정으로 타 올랐을까요?

 

Of course, we also know, tragically, that the arrival of the Catholic faith in Korea was accompanied by waves of the fiercest persecution, both before and after the arrival of the French missionaries.  Tragic, but in God’s Providence, the seed bed of the Church.  As always, the blood of martyrs watered the seeds of the faith which had been planted and began to grow.

비극적인 일입니다만, 프랑스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 뿐아니라 도착한 후로도, 한국에 도달한 가톨릭 신앙에, 가장 처절한 박해의 물결이 수반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비극적이었지만 하느님의 섭리아래 박해는 교회의 못자리가 되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순교자들의 피는 이미 심어진, 신앙의 씨앗에 물을 주었고 그리하여 신앙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This unprecedented phenomenon of Korean Catholicism moved Pope St. John Paul II to state, in his homily at the Mass of Canonization of the Korean Martyrs in 1984 during his Apostolic Visit there:

The Korean Church is unique because it was founded entirely by lay people.  This fledgling Church, so young and yet so strong in faith, withstood wave after wave of fierce persecution.  Thus, in less than a century, it could boast of 10,000 martyrs.  The death of these martyrs became the leaven of the Church and led to today’s splendid flowering of the Church in Korea.

 

이 전례 없는 한국 천주교의 현상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을 감동시켰는데, 교황님은 사도좌 방문이 있었던 1984년, 한국 순교자 시성식의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국 교회는 전적으로 평신도에 의해 세워졌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아직 아주 어리지만 신앙이 강한 이 새내기 교회는 많은 처절한 박해의 파고들을 견디어 냈습니다. 그래서 불과 한 세기도 안 되어서 만명의 순교자를 자랑스럽게 배출해 냈습니다. 이 순교자들의 죽음이야말로 교회의 누룩이 되었고, 화려하게 꽃피우는 오늘날의 한국 교회를 이끌어 냈습니다.

 

Notice the interesting turn of phrase Pope John Paul uses: he speaks of “boasting” of 10,000 martyrs.  This is the great boast, the great legacy, that you Korean Catholics have inherited from your ancestors, and that you must live up to and pass on to future generations. 

교황 요한 바오로가 말한 “만명의 순교자들을 자랑스럽게 배출했다”는 표현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선조로부터 물려 받은 큰 자랑거리이며 유산이고, 여러분이 현재의 삶으로 살아내야 하고, 미래의 세대에게 전해주어야 할 큰 자랑거리이고 유산입니다.

The Jubilee Celebration 희년 축하

This Mass of Canonization followed shortly after the conclusion of the Extraordinary Jubilee Year that St. John Paul proclaimed to mark the 1,950th anniversary of our redemption, extending from the Solemnity of the Annunciation in the year 1983 to Easter of the following year.  We, likewise, are in the midst of an Extraordinary Jubilee Year, the Year of Mercy proclaimed by Pope Francis in order to open more widely to the faithful the graces of the Lord’s merciful redemption which he won for us by his death on the Cross. 

            인류가 구속된 지 천구백 오십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3년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부터 그 다음해인 부활절까지,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 선포하신 특별 희년의 폐막식이 거행되고 얼마 있지 않아 이 시성식 미사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프란치스코 교황님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자비하신 구속 은총의 문을 보다 활짝 열어 주기 위해,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 희년 기간 중에 있습니다.

Our first reading for our Mass today speaks of the jubilee year.  According to ancient Jewish law, every seventh year was a sabbatical year, a year of rest; and every seventh year of seven years, that is, every fifty years, a jubilee year was to be celebrated that would mark a restitution to the previous state of affairs: slaves were set free, people returned to their families, those who had lost property had their property restored to them.  This celebration of restoration prefigures the true restoration that God would win for us through His Son Jesus Christ: a restoration to the original dignity and destiny with which He created us – to share His life and His love forever.

오늘 미사의 첫번째 독서는 희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고대 유대교 법에 따르면, 매 칠년째 되는 해가 안식년이었습니다. 7년이 일곱번째 되는 해, 즉 매 50년마다 희년을 치루었는데, 희년은 이전 상태로 복원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즉, 노예들은 해방되었고, 사람들은 가족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재산을 잃어버렸던 이들은 재산을 돌려 받았습니다. 이런 복원을 축하하는 일은 하느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진정으로 복원시키리라는 것을 예고해 주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원래 우리에게 주신 존엄성과 운명을 복원시키는 것, 즉, 그분의 삶과 사랑을 영원히 나누는 것 말입니다.

 

And so Pope Francis wishes for all the faithful an opening of their hearts to this redemptive mercy of God.  As he says in his Bull of Indiction, “The Face of Mercy,” with which he proclaims this Jubilee Year: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모든 신자가 마음의 문을 열어 우리를 구속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 들이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희년을 선포하신 ‘자비의 얼굴’이라는 칙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Though we feel the transforming power of grace, we also feel the effects of sin typical of our fallen state….  But the mercy of God is stronger even than this.  It becomes indulgence on the part of the Father who, through the Bride of Christ, his Church, reaches the pardoned sinner and frees him from every residue left by the consequences of sin, enabling him to act with charity, to grow in love rather than to fall back into sin.

비록 우리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은총의 힘을 느끼지만 우리는 또 우리의 타락된 상태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죄의 결과도 느낍니다. ..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는 이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그 자비는 하느님 아버지의 대사가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통하여 이미 용서받은 죄인에게 다가가시어 죄의 결과로 남은 모든 잔여물에서 그를 해방시켜 주시고,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고 자비롭게 행동하며 사랑을 키울 수 있게, 해 주십니다.

 

The Current Reality 현재의 현실

As we heard in the Gospel that was just proclaimed to us, Christ was anointed to bring this Good News, to liberate us and to restore to God’s original design.  But, as Pope Francis reminds us, this mercy isn’t automatic; rather, we need to open our hearts to it, because of the “residue left” in us “by the consequences of sin.”  And here, Korea is an invaluable gift to the Church.  Given your extraordinary history of saints and scholars, of heroic suffering for the faith, Korea has much to teach the universal Church.  Korea is, in a certain sense, anointed as well, anointed to shed light for the Church on how to live the Good News in these time in which we are facing unprecedented challenges to living our Christian faith with integrity.

방금 우리에게 선포된 복음 말씀에서 들은대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우리를 하느님의 원래의 계획대로 복원시켜 주는, 이 복음 말씀을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기름 부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상기시켜 주듯이, 이 자비는 자동적으로 받는 것 것이 아닙니다. 죄의 결과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잔여물 때문에, 자비에 마음을 열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국 교회는 보편 교회에 매우 귀중한 선물을 줍니다. 많은 성인과 학자들을 배출하고, 신앙을 위해 바친 영웅적인 희생들로 채워진, 비범한 역사를 지닌 한국 교회는 보편 교회에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한국 교회가,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의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을 진실하게 살아가는데 전례없이 도전이 되는 이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복음대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빛을 밝혀주는 기름 부음 말입니다.

 

To begin with, there is the breakdown of marriage and the family, that which is the very foundation of society.  At a time when marriage and family life are strained and torn apart from the pressures of contemporary ideas and lifestyles, I am grateful for the presence of so many Korean Catholics and other Asians in our Archdiocese.  You still understand the importance of family cohesion and unity, a witness we desperately need today.  In addition to this, given the secularizing influences in the West that have eroded the sense of the sacred and stigmatized the practice of religion, there is so much more that the two-hundred years of Korean Catholic experience has to teach the Church throughout the world: the role and vocation of the laity in spreading the Good News of Jesus Christ; a living faith of spiritual union with Christ as the only proper disposition for receiving the sacraments worthily; suffering persecution for the faith, and not compromising the integrity of the faith under any circumstances, no matter how harsh the suffering.  It is precisely such trials as these which move us to cling tenaciously to the faith, that make us strong and bolster our conviction.

먼저, 사회의 가장 근본인 결혼이 무너지고 가족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현대적인 사상과 삶의 방식이 주는 압박 때문에 혼인이 갈라지고 가족 생활이 구속받는 이 시대에, 우리 대교구에 한국 가톨릭 신자와 다른 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오늘날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족의 결속과 일치의 중요성을 아직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신성함을 잠식 시키고 종교 행위를 비난하는 서양의 세속화 경향을 비춰 볼 때, 이백년 역사의 한국 천주교의 경험이 전세계 교회에 가르쳐줄 것은 너무도 많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평신도의 역할과 소명 의식, 성사를 합당하게 받기 위해서 유일하게 요구되는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일치하겠다는 살아있는 신앙, 그리고 고통이 아무리 호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의 진실과 타협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박해를 감내하는 일 말입니다. 바로 이런 시련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우리의 확신을 견고하게 해주는, 신앙에 더 끈기있게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You indeed have a precious legacy, and I speak especially to the young when I say: do not squander this heroic witness!  You, likewise, are called to bear courageous witness to your faith in the face of hostility.  Although it is doubtful that you will be called upon to bear witness to Christ by the shedding of your blood – as was St. Andrew Kim Taegon, St. Paul Chong Hasang, and their 101 companions, along with those thousands and thousands of other martyrs – you, too, are called to be martyrs, but in a different way: you will likely have to bear ridicule and scorn for being openly and visibly true to your faith; you may even suffer being stigmatized and shut out of opportunities extended to others who don’t have, or hide, their religious beliefs.  Do you, too, have the courage of your ancestors?  Do you, too, have the integrity of seventeen-year-old Agatha Yi who said, when she and her younger brother were falsely told that their parents had betrayed the faith: “Whether my parents betrayed or not is their affair.  As for us, we cannot betray the Lord of heaven whom we have always served.”  Because of this witness of hers, six adult Christians freely delivered themselves to the government officials to be martyred.  You, too, have this power.

여러분은 정말 귀중한 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웅적인 증언을 함부로 낭비하지 마십시오.”라고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적의에 대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신앙을 용감하게 증언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 정하상  바오로 성인 그리고101위 동료 순교자들이나 수천명의 순교자들처럼 피를 흘려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부름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들도 다른 방식으로 순교자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공개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여러분의 신앙에 충실하게 되면 여러분은 아마도 비난을 받고 조롱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심지어 오명을 씌게 되고, 종교적인 믿음을 갖고 있지 않거나 믿음을 숨기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기회를 박탈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선조들의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 아가다처럼 충실합니까? 17살이었던 이 아가다는 그녀의 부모가 신앙을 배반했다는 거짓말을, 남동생과 함께 듣게 되었을 때, “우리 부모가 신앙을 배반한지, 안 한지는 그분들의 일일뿐이고 우리로서는, 우리가 항상 섬겨왔던 천국의 주님을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아가다의 이 증언 때문에, 여섯 명의 성인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관헌들에게 넘겨져서 순교에 처해졌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신앙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Conclusion 결론

In that canonization homily, St. John Paul II also said the following: “The Korean Martyrs have borne witness to the crucified and risen Christ. Through the sacrifice of their own lives they have become like Christ in a very special way.  The words of Saint Paul the Apostle could truly have been spoken by them: We are “‘always carrying in the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manifested in our bodies.’”    (2 Cor 4:10)

앞에서 언급한 시성식 강론에서,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순교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삶의 희생을 통해, 그분들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처럼 되었습니다.  그분들에 의해 바오로 성인의 다음 말씀이 진정 들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May the hallowed and inspiring spiritual inheritance which is yours as Korean Catholics keep you strong in the faith, so that you may live up to the legacy of your ancestors who carried about in their bodies the death of Jesus.  May you do so in the way that God calls you to today, and may the saints and martyrs in your lineage, and those of the whole Church, inspire us all to be faithful and courageous witnesses of the Good News to all the world.

            한국 천주교 신자로서 여러분의 것이 된 거룩하고 영감을 주는 영적인 상속 재산이, 여러분의 신앙을 강하게 지켜 주어서,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녔던 선조들의 유산에, 맞갑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오늘 불러 주시는 대로 살아 가시고, 여러분의 혈통을 지닌 성인과 순교자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의 성인과 순교자들이 우리 모두에게 영감이 되어, 우리 모두가 전세계를 향해, 복음에 충실하고 용감한 증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